교양

옛날 사람들도 치과의 공포가 있었을까

흰a 2022. 12. 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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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사를 갈랐을 수 있는 공포의 대수술 치과. 과거에도 치과라는 게 있었을까? 치통에 대해서 알 았을 까? 치위생의 필요성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에 대해 고민해 본다

 

옛날에는 치과 치료를 어떻게 받았을 까?

사람이라면 '이빨'이 아니라 '이'가 아프다고 한다. 동물의 이만 이빨이라고 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문제이다. 이 가 시리고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얼른 치료받는데 낫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치과 갈 생각만 하면 소름부터 끼친다. 의료기술이 발전한 현대사회조차 치과만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는데, 옛날에는 어떻게 치과치료를 받았을까? 옛날 사람들은 물론 지금 처렁 설탕 덩어리로 만들어진 디저트들을 입에 달고 살진 않았을 터이다, 고로 현재처럼 충치도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치아 마모 등과 다른 문제 때문에 치통을 겪을 수는 있었을 수 있다. 원시시대 초기의 인료 두개골을 보면 이가 심하게 닳아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아무래도 지금보다 훨씬 거친 음식들을 섭취했을 것이고, 가죽이나 직물 등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이를 도구처럼 사용하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충치는 언제부터 생긴것 일까?

그렇다면 옛날에도 쌀을 섭취했을 텐데, 쌀을 섭취 한 이후 보터 충치가 생긴 것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고대 4대 문명 중 하나인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 충치, 잇몸병 등 온갖 치아 질환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문명을 발전시켜가던 인류에게 충치는 아주 크나크고 오래된 적이었다. 칫솔과 유사한 물건들은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에서 발견되었고, 기원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 바빌론의 점토판에는 치통으로 고생한 사람이 자신의 이를 파먹는 벌레를 저주하는 내용이 담겨있을 정도로 그들에게 충치는 큰 고통임을 알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치통의 원인을 알 수 있었을까?

당시 사람들은 이가 아픈 원인을 세가 지정 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 치아 귀신
  • 구더기
  • 건강의 이상

첫째는 치아 귀신이 붙어서, 악마나 귀신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구더기 같은 벌레가 치아를 갉아먹었다고 생각했다. 셋째는 인체를 구성하는 체액에 문제가 생겨서 건강이 나빠졌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원인을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법도 없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신전을 찾아가서 제발 치통을 없애달라고 빌었다. 연기를 들이마셔서 치아 벌레를 죽이려고 하기도 하고, 콧물/혈액/땀/소변 등 좋지 않은 체액을 배출하면 치통이 나을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아플 때는 온갖 좋아 보이거나 괜찮아 보이는 희한한 재료를 넣어 만든 약물을 만들어 먹거나 염증이 나타난 부위에 바르기도 했다고 한다. 

 

 치과 의료 수준이 좋아진 것은 로마시대부터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가 아프면 치과 전문 내과 이사, 발치사, 외과의사 등을 찾아갔다. 이들은 치아에 금박을 붙이거나, 흔들리는 치아를 고정하거나 심지어 상아나 뼈를 이용하여 임플란트를 하는 방법까지 고안했다. 하지만 익히 아는 대로 당시의 치료 도구와 의학기술의 한계로 치료를 받다가 과다출혈이나 쇼크, 수술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참고로, 옛날 중세 유럽에서는 이발사가 외과 의사 일 도 겸직했었다고 한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종종 보이는 이발소 앞에 있는 빨간색/파란색/하얀색 줄무늬의 원통형 회전 간판이 수술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빨강은 동맥, 파랑은 정맥, 하양은 붕대를 의미한다. 그래서 중세시대 사람들은 이가 아프면 정말 엄청난 고통을 경험했어야만 했다. 중세 유럽의 의학은 로마제국 이후 거의 발전이 없었던 데다가, 치과 치료는 열등하다는 인식으로 인해 많은 의사가 치과 치료에서 손을 떼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무가가 없다 보니 돌팔이들이 대거 출몰했었다. 당시의 발치 사들은 마치 서커스단처럼 전국을 돌며 사람들을 모은 뒤 기적의 발치 쇼를 벌였다. 속임수로 가짜 이빨을 뽑은 후 하나도 안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서 환자들의 돈을 뜯어가기도 했다.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를 지나 18세기에 와서야 현대적인 의미의 치의학이 탄생하게 된다. 비록 돌팔이 발치사나 해괴망측한 치료법도 여전히 판을 쳤지만, 이 당시부터에서 야 의대에서 치의과가 따로 분리되어서 전문교육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19세기에는 아산화질소, 에테르 등의 마취제 효과가 알려지면서부터 치과 치료가 더욱 안전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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