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옛날 기술자들의 연봉은 얼마였을까

흰a 2022. 12. 1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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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도 잘나가는 직업은 옛날에도 잘나가는 직업이었다. 지금처럼 큰기업들에 다니는 회사원 못지않게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직업이 바로 기술자 들이 었다. 이들의 가치는 얼마나 되었을까 한번 확인해 본다.

옛날에도 잘나갔던 직업들

신라시대 때는 귀족 자제들이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다녀오는 경우가 많았다. 신라 말기의 최치원이 당나라의 외국인 대상 과거시험인 빈공과에 당당히 합격한 것을 보면 그의 중국어 실력이 굉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나랏일을 맡을 공식 직책으로 통역관이 처음 등장한 건 고려시대부터이다. 그전까지는 나랏일도 유학생이나 개인 통역가에게 의뢰하다 보니 일부러 망릉 다르게 하여 돈과 물건들을 빼돌리는 일들도 빈번했다. 통역관은 이로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다른나라에 무역을 할 때도, 외교에서도 적극 활용이 되었다. 하여, 고려 25대 충렬왕은 최초의 공인 외국어 학교 통문관을 만들었는데, 고려 말에 사역원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이 기관이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조선도 주변국들과의 외교, 특히 중국 명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는게 굉장히 중요했다. 조선시대 이후부터는 외국어 교육 뿐 아니라 외국의 선진 학문들을 국내로 들여오는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기관이 되었다. 

 

옛날의 기술을 가르치는 기관들 사역원과 산원

  • 사역원

사역원에는 중국어, 몽골, 여진어, 일본어등이 있었다. 한양의 청사 외에도 여러 지방 청사를 두어 학생들을 양성해냈다. 사역원에 입학하기는 쉽지않은 절차를 통과해야했다. 심사위원들이 지우너자의 집안, 조상 등을 검토한 뒤에야 입학시험을 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역원에서는 어떻게 외국어를 가르쳤을까? 당시에도 교재는 있었기 때문에 교재를 통해 달달 외워서 공부를 하고 파트너를 정해서 실전 회화를 연습하며 익히는 방법이 있었다. 지금에도 외국어를 배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교재를 외우는 것 보다, 외국에 한번 나갔다 오거나, 외국인 친구와 연애하는 방법을 종종 얘기하곤 한다. 옛날에도 이 방법을 이미 체감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오랫동안 외국어 공부를 해봤자, 두 달 정도 현지에 다녀온 사람보다 못하여, 사역원 안에서는 무조건 외국어로 대화하여야 하는 규칙을 만들자고 했다. 

 

  • 산원과 산학청

조선시대에는 언어뿐 아니라 수학도 기술이었다. 지금의 기획재정부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산원은 수학자이자 회계사였다. 조선시대는 농업 국가 였기 때문에 농지를 측량하고, 수확량을 예측하며, 그에 따라 조세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데 수학을 활용했었다. 측우기 또한 당시 세자였던 문종이 세종의 명에 따라 설계하고 장영실이 제작한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세종대왕은 수학을 학문의 기본이 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공부하고 신하들에게도 중요성을 강조했다. 외국어는 사역원에서 배웠다면, 수학은 산학청에서 교육을 받았다. 조선의 산우너들은 과거시험이 아닌, 호조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시험으로 선발되었다. 선발된 사람들은 명나라때 들어온 책자들을 통해 토지나 사물의 길이, 부피, 무게 등을 재는 방법과 논밭의 넓이, 그리고 곱셈 나눗셈등을 배웠다. 

 

안타깝게도 기술직에 대한 공식 처우는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으나, 역관이나 산원 외에도 무기를 군기시, 의복을 만드는 상의원, 도자기를 만드는 사기장등 많은 기술직 장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중인 신분인 데다가 여러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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